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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불청객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어느 날이었다. 거울을 보니 내 엉성한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두피가 훤히 드러났다. 머리카락을 살짝만 잡아당겨도 그냥 쏙 빠져 버렸다. 탈모 증상에 잔뜩 겁을 먹은 나는 임신한 몸으로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당장 탈모를 치료할 방법은 없었다. 임신한 상태라 약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출산을 앞두고 너무나 초조했다. 이러다 머리가 모조리 빠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머리 감기도 싫었고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기도 싫었다. 사람을 보면 풍성한 머리카락만 눈에 들어왔다. 급기야 대인기피증까지 앓았다. 거의 집안에서 텔레비전, 컴퓨터와 살았다.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모자를 꼭 눌러썼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빨리 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에 출산 예정일을 앞당겨 둘째를 낳았다. 하지만 예쁜 아기를 보고 있어도 머릿속은 온통 머리카락 생각뿐이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뒤 날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아이를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 괜히 탈모의 원인을 아이에게로 돌리는 못난 엄마였다.
여전히 탈모는 진행 중이다. 그러나 탈모 때문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참 힘들어할 때 친정엄마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검은콩 우유를 만들어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려놓고 꼭 마시라는 당부를 남기고 가셨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첫째 언니는 내게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며 꽃무늬 벽지를 사다 직접 우리 집 벽에 발라 주었다. 둘째 언니는 머리카락이 더 났을 때 하면 예쁠 거라며 화사한 분홍색 밴드를 선물했다. 내 주위에 이런 든든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 뒤부터 내 삶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불청객인 탈모가 전혀 두렵지 않게 됐다.
박정현 님 / 충남 논산시 강산동 (071025)
- 좋은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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