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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할머니의 손녀 사랑

두레골 2007. 10. 23. 13:48

 

깐깐한 할머니의 손녀 사랑  

 

해마다 7월이면 노란 옷을 입고 자기를 한껏 뽐내는 달콤한 참외가 등장하지요. 다른 과일에 비해 영양가는 별로 없지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먹으면 시원한 맛이 환상적이죠. 여름만 되면 노란 참외와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대장부도 울고 갈 정도로 여장부셨던 할머니, 청양고추보다 더 맵게 엄마를 시집살이시킨 할머니. 무척이나 부지런하셨던 할머니는 누군가 아침에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면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내게 앞마당과 뒤뜰을 빗자루로 쓸고 난 뒤 학교에 가라고 명령을 내리셨죠. 늦잠을 못 자는 것도 불만인데 청소까지 시킨 할머니를 나는 미워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던 어느 날은 늦잠을 자서 부랴부랴 분주하게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할머니의 불호령과 함께 공기를 가르며 날아온 신발 하나가 내 등짝을 때리고 툭 떨어졌습니다. 지금 출발해도 1교시 수업에 지각하는데 할머니는 뒤뜰에 떨어진 감꽃를 다 줍고 학교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난 할머니를 원망하며 감꽃을 다 줍고 학교에 갔죠.

 

융통성 없고 고집만 센 할머니를 미워하며 종일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방과 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대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기숙아, 아침엔 이 할미가 잘못했다. 오늘 너 귀 빠진 날이여. 일루 와서 시원한 참외 먹어라.”

 

대청마루에 올라서니 스펀지 같이 폭신폭신한 술빵과 황금처럼 빛나는 노란 참외가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원망하던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내 눈망울엔 닭똥 같은 눈물이 앞을 가렸죠. 그 뒤 내 생일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술빵과 참외를 꼭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7월만 되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서기숙 님 /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 좋은생각에서 (0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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