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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약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암으로 잃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반 년도 못 되어 우리를 보살핀다는 명목으로 새어머니가 오셨지만 살가운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5학년이던 언니가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지어 놓고, 난 학교 가기 전에 늘 설거지를 했다. 심지어 언니는 농사일을 하느라 학교를 두어 달이나 쉰 적도 있었다.
새어머니는 우리에게 정을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언제라도 떠나겠다는 듯 날갯짓을 여러 번 하시다 결국 아버지 곁을 떠나셨다. 우리는 새어머니가 안 계셔서 편했지만 아버지는 한동안 술만 드시더니 결국 새어머니를 찾아오겠다며 홀연히 집을 떠나셨다.
그 뒤 아버지는 오랫동안 집에 오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언니와 나는 부모에게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외롭고 힘들게 살았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난 가족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다 시어른과 남편의 사랑을 받은 나는 눈물 많고 여린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어렵게 다시 찾았다. 그러나 그분은 다시 아버지 곁을 떠나셨다. 어느새 칠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한쪽 수족이 마비돼 병원에 입원하셨다. 나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 거의 날마다 병원에 가고 있다. 아버지 병실에 도착하면 허약한 체질 탓에 잔기침을 해댄다. 그러자 어느 날 아버지가 간호사 눈치를 보며 물약을 한 병 건네주셨다. 필요 없다고 하면 아버지는 억지로 가방에 물약을 넣으신다. 벌써 그 약병이 냉장고 한쪽에 줄줄이 세워져 있다. 아버지는 기침을 달고 사는 막내딸 때문에 가짜 기침을 하면서 하루 한 번씩 간호사에게 물약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낀다. 먹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약병들은 수십 년간 숨바꼭질하다 이제야 찾은 사랑인 듯 뻐근한 행복과 아쉬움이 동반된 슬픔을 준다.
배단희 님 / 전남 목포시 옥암동
- 좋은 생각에서 (0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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