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신명 26,16-1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6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17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다. 18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곧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19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복음 마태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침이 되면 키우는 개 두 마리를 끌고서 성지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개들도 운동 시키고 성지를 두루 살펴보면서 밤사이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다니다보면 종종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종이를 비롯한 쓰레기가 구석진 곳에 버려져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 쓰레기를 주우면서 좋은 생각이 날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 아침이었습니다. 이 날 역시 개를 끌고 산책을 하면서 성지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지 구석에서 종이를 한 장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화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밤사이에 내린 비에 흠뻑 젖었지만 짜증도 나지 않습니다. 왜 똑같은 종이인데 화도 또 짜증도 나지 않았을까요?
이번에 주운 종이는 쓰레기통에 버릴 쓰레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종이는 종이지만 우리가 무엇인가를 구입할 때 사용하는 화폐인 ‘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똑같은 종이이고 똑같이 성지 구석에 떨어져 있었지만, 이 종이를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종이의 가치에 따라 대하는 것이 달라진 것이지요.
가치가 있다면 어느 곳에 있다 해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쓰레기통 속에 처박혀 있더라도 돈의 가치는 바뀌지 않습니다. 돈의 가치를 떨어트리겠다고 마구 짓밟아도 그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혹시 쓰레기통에 있어서 다른 쓰레기와 똑같이 취급받고 그냥 버려질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쓰레기통에 있어서 쓰레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가 어디에 있다 하더라도 나의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 누군가로부터 짓밟히는 모욕을 당한다 해도 우리 인간의 가치가 쓸모없는 존재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인간 자체의 가치를 무시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소중한 존재인데 말이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나약하고 부족함을 내세우면서 완전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고 절망에 빠질 때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 특별하게 창조된 소중한 가치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완전성 역시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나 박해를 하는 자라 할지라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완전성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완전성을 부여 받은 우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제외 없이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그래서 모두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하느님 나라가 아닐까요?
인간의 생명은 둘도 없이 귀중한 것인데도, 우리는 언제나 어떤 것이 생명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란 무엇인가?(생텍쥐페리)
 우리의 가치를 높여 주시는 주님.
가장 소중한 것
몇 대째 가게를 운영하던 한 형제님이 병으로 인해 이제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 형제님 곁에는 모든 가족들이 슬픔에 차서 지켜보고 있었지요. 이 형제님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가족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이름을 부르고는 형제님께서 갑자기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여기 다 있으면 가게는 누가 지키고 있는 거야?”
탈무드에 있는 내용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가게를 지키는 것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우리 가족의 가장을 마지막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까요? 당연히 후자의 경우겠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자주 잊고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정말로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는데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
 많은 신부님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역시 밥은 같이 먹어야 맛있네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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