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1티모 1,1-2.12-14
1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과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나 바오로가, 2 믿음으로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12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복음 루카 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제 사회 친구들 중에서 혼자 사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장가, 시집을 가서 아이들과 함께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지요. 그런데 저를 보면 하나같이 “부럽다”고 말합니다. 배우자에게 싫은 소리 들을 필요 없고, 자식 걱정으로 신경 쓸 일이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합니다. 더군다나 돈에 얽매이지 않고, 승진을 위해 공부할 필요도 없으니 부러운 이유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친구들의 그런 부러움에 대해 인정하면서 독신으로 살아가는 사제의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옷 입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피부를 가꾸는 것도 무관심합니다. 이런 저를 오랫동안 보았던 친구 한 명이 이런 말을 합니다.
“너 그렇게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지만, 겉으로 보이는 네 모습에 대해서 신경 쓰면서 살아야 해. 그래야 사람들에게 호감도 줄 수 있잖아. 그 모습이 공인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나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공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면 아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이 말에 스스로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혼자 사는 독신이니까 대충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진정으로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때로는 배우처럼 연기도 필요한 법입니다. 물론 명품으로 온 몸을 치장하라는 것이 아니지요. 그보다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는 적합한 겉모습을 갖추었을 때, 그들에게 쉽게 가깝게 다가설 수 있고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내 중심으로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의 특권이고, 이러한 털털한 모습을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들은 어쩌면 나 자신만을 생각했던 이기적이고 편협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사람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야기하십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빼내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먼저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은 자신의 모습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남들에게 이러쿵저러쿵 말만 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진정한 위로를 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제는 먼저 내 자신을 꾸며 보았으면 합니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꾸밈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즉 내 이웃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먼저 꾸밀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야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뜻에 맞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위대한 꿈을 먼저 세워라. 그리고 기술과 실력을 다져라. 그 이후에 얻어지는 직업은 그 어떤 것이든 자신의 위대한 꿈을 실현시켜 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이다(고도원).
 스스로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십자가를 보세요.
플라세보 효과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라고 있지요. 특정한 유효성분이 들어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환자에게 투여해서 유익한 작용을 나타내는 효과를 말합니다. 그런데 반대의 효과가 날 때도 있습니다.
한 여인이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살충제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마신 것은 독이 없는 액체였지만 그녀는 살충제를 마셨다는 심적인 충격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담석증 수술을 받기로 한 여인은 수술 전에 자기 배에 칼을 댄다는 사실이 두려웠지요. 그래서일까요? 수술대 위에서 마취 전에 먼저 알코올로 배를 소독했는데 이를 마취도 하기 전에 자기 배에 칼을 댔다는 생각에 쇼크사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는 철도국 직원에 냉동차에 갇혔지요. 그는 차의 바닥에 자신이 얼어 죽는다는 유서 비슷한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사실 냉동차는 고장 나서 내부 온도는 영상 13도였고, 환기구도 있어서 산소도 충분한 상태였습니다.
정신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하는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마음이 지금의 삶을 더욱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는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말했습니다.
“낙관론자는 위기에서도 기회를 보지만, 비관론자는 좋은 기회에서도 위기를 느낀다.”
 어제 제 신학교 추천 신부님이신 이학노 요셉 몬시뇰님의 칠순미사가 있었습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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