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50703(금)-인간적인 계산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5. 7. 3. 11:01
2015년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제1독서 에페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복음 요한 20,24-29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M이라고 하고 아마 포스트잇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사실 3M의 연구팀은 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하려고 했지요. 그러나 직장동료의 책갈피가 자꾸 떨어져 불편함을 보고 ‘필요할 때 붙이고 자국이 안 남게 떼어내는’ 것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포스트잇이 만들어졌고, 이 포스트잇은 3M의 대표 상품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계산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지구의 둘레가 29,000Km라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에 따라 자신이 가고자 했던 인도까지의 거리가 4,345Km라고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원을 위해 포르투갈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지구 둘레가 대략 40,000Km라고 주장했던 에라토스테네스의 이론을 내세워서 터무니없는 항해를 지원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사실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은 거의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확한 계산이 오히려 신대륙을 발견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지요. 반대로 콜럼버스는 잘못된 계산 덕분에 오히려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이 분명히 맞는다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인간적인 계산을 내세워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 길을 가지 못하도록 막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계산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더 좋은 쪽으로 분명히 흐를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에 토마스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합니다. 당시 예수님의 죽음 뒤에 갖게 되었을 절망감을 떠올린다면 이런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게 됩니다. 더군다나 인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기준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토마스 사도에게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토마스 사도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라는 고백입니다. 그렇게 믿지 못하겠다고 외쳤던 사람이 곧바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인간적인 판단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고 바로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께 대한 깊은 사랑을 갖고 주님의 관점에 맞춰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불신의 마음이 생겼을 때도 곧바로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헤아리지 않는다. 자기의 사랑 자체가 이미 확신이므로 헤아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사랑은 나누어 갖는 것이므로 반드시 넘쳐흘러야 한다(G.아궤예스).

 
토마스 사도 동상.


행복해지는 방법

UN에는 매년 각 나라의 세계행복지수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2015년 올해에는 1위의 자리에서 벗어나 3위를 차지했지만, 몇 년 동안 계속해서 1위를 차지했던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바로 ‘덴마크’입니다. 가보지 않은 나라이지만, 이 나라가 그렇게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우선 비오는 날이 1년 중 절반이며, 겨울에는 하루 4시간 정도만 해가 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겨울에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살만한 나라입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행복지수 1위에 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국민들의 대다수가 다음 세 가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이들은 초를 밝히고 명상의 삶을 좋아합니다.

둘째, 주위 환경 탓을 하지 않습니다.

셋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다보니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행복해지는 방법, 어떻게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 같습니다. 기도와 묵상으로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며, 남 탓을 하지 않는 생활태도, 또한 나 혼자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함께 하는 마음을 가질 때 진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행복을 향해 오늘 위 세 가지를 실천해 보았으면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김현수(토마스) 신부님의 은경축 미사가 오늘 5시 답동성당에서 있네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메'에서 옮김 (1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