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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50406(월)-큰 감동 속에서 참 행복의 길을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5. 4. 6. 08:32
2015년 4월 6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제1독서 사도 2,14.22-33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복음 마태 28,8-15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요즘이야 강의 부탁을 받으면 시간만 허락된다면 기쁘게 수락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요. 왜냐하면 남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 자체를 너무나 어렵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위 울렁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남 앞에 섰을 때의 긴장감이 저를 무척 힘들게 했습니다.

2,000년, 제가 보좌신부 때 처음으로 강의 부탁을 받았던 해였습니다. 저는 능력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그것도 두 시간 동안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할 수 있겠냐면서 거절을 했었지요. 그랬더니 강의를 부탁하신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별 내용이 없어도 상관없어. 그냥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만 하면 돼.”

선배신부님의 반 명령조의 부탁이라 수락하기는 했지만, 아마 지금까지 강의준비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내용이 중요하지 않고 재미있게만 하면 된다는 말이 저를 더욱 더 힘들게 했지요. 저는 신부이지, 개그맨이 아니잖아요.

이 강의가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뒤로 강의부탁을 많이 받고 또 실제로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의주제를 어떻게 할까요?”라고 여쭤보면 대부분 “주제는 신부님께서 알아서 정해주고요. 그냥 재미있게만 해주세요. 안 그러면 신자들이 지루해서 힘들어하거든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사제인 것이 분명한데, 신자들은 사제가 아닌 개그맨을 원할까요?

재미있는 것을 찾는다면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사제가 아닌 인기 개그맨을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한데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사실 재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아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것. 비록 재미가 없더라도 의미를 찾아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면 가장 최고의 강의인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대표 개그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점점 하락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소재의 고갈과 새로움의 부재라는 것이었지요. 재미라는 것은 이렇게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습니까? 2000년 넘게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이 재미있습니까?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뜨거운 감동을 주는 말씀이기에 변화를 일으키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신앙을 어떤 세속적인 재미 속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그보다는 그 안에 담긴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부활의 모든 것을 본 경비병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주의 깊게 보십시오. 그들은 시신을 도둑맞았다고 거짓말 하는 대가로 돈을 받음으로써 부활의 영광을 외면하지요. 그들은 부활에 관하여 침묵함으로 이 세상의 영예와 즐거움을 산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을 세속적인 재미 속에서만 찾는다면 경비병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려고 노력 했던 여인들이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보다도 먼저 만나고 또한 제자들에게 사명을 전달하는 중요한 몫까지 얻게 되었음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예수님을 쫓은 여인처럼 주님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재미를 얻을 수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큰 감동 속에서 참 행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살이란 살인의 최악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후회할 기회가 하나도 없으므로(J C 크린스).


요즘에는 정말 이렇게 스마트폰을 들이댈 것 같아요.


어부의 기도(작자 미상)

주님, 저로 하여금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당신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내던져짐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가슴을 ‘꽝’하고 울리는 기도였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오신 주님이시지요. 사실 어부는 쓸모없는 고기는 과감하게 버립니다. 가져와봐야 쓸데가 없고, 짐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내 자신이 그 쓸모없는 물고기의 모습이라면 어떨까요? 주인이신 주님으로부터 절대로 내던져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달라고....


어제 소래에 가서 찍은 사진. 어부의 밥상인가? 그런 제목인 것 같더라구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