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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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50106(화)-행복의 기준을 새롭게-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5. 1. 6. 08:44
2015년 1월 6일 주님 공현 후 화요일

제1독서 1요한 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복음 마르 6,34-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34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초콜릿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돈 많이 벌어 초콜릿을 맘껏 먹겠다는 다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이 초콜릿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렇게 초콜릿을 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돈이 있어도 굳이 초콜릿을 구입하지도 않고, 제 주위에 초콜릿이 있어도 손이 가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가지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친구들이 자랑하는 유명 메이커의 신발이나 옷도 가지고 싶고, 이성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사제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고, 드디어 1999년 1월 28일 제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했던 사제가 되었습니다. 사제로 살고 있는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사제가 되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제 마음의 변화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닌 주님의 기준인 사랑의 마음을 따르다보니 그 누구보다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통해 오히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제 능력 밖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부족하고 나약하기만 했던 저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모두 해 주셨습니다.

오늘 인천교구는 매우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새롭게 7명의 사제와 12명의 부제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들을 통해서도 주님께서는 커다란 일을 이루시겠지요. 그런데 그 일들은 주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서품 받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더욱 더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먼저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빵의 기적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배경이 외딴 곳이었습니다. 배불리 먹을 빵을 사오기가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그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먹을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많은 양이었을까요? 예수님 혼자 드신다면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이 먹기에도 분명히 터무니없이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전혀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시면서, 우리를 위해서는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행복의 기준을 새롭게 세울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이 채워져야 행복할 것이라는 쓸데없는 기대를 버리고, 대신 주님과 함께 하는 마음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항상 우리를 위해 최고의 것을 주시는 주님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변화가 클수록 기회도 많다.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 지혜라면, 기회를 잡는 것은 용기다(호설암).



지금 나의 선택은?

어느 마을에 아름다운 고성이 있었습니다. 그 성 한가운데는 연못이 있는데 개구리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에 불이 났습니다. 개구리들이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뉘었지요. 하나는 빨리 이 성을 빠져나가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장 안전한 곳은 물속이니 가만히 엎드려 있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그룹은 물 밖으로 도망쳤으며 다른 그룹은 물속에 숨었습니다.

어떤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요? 물속이 정말로 안전한 곳이었을까요?

마을 사람들이 불을 끄기 위해 연못의 물을 퍼서 불속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때 물속에 있던 개구리들도 불속에 던져져 죽고 말았지요.

분명히 불과 물은 상극이니 물속에 안전할 것 같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택도 이럴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생각보다는 순간적으로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을까요? 중요한 것은 내 행동에 따라올 결과를 늘 염두 해 두어야 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따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주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주시는 주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 나의 선택을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정말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선택을 하십니까?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