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루카 17,20-25
철학자의 대명사가 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어떤 책도 쓰지 않았지만, 오히려 삶에 대한 철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의 사상을 여러 권의 ‘대화편’에 담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소크라테스가 말년에 모함으로 법정에 섰고, 결국 독배를 받고 죽은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그가 보여 준 의연한 모습은 철학을 ‘죽는 연습’이라 한 자신의 말을 스스로 실천한 것이어서 후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크리톤』이라는 대화편에 보면,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권유하는 부유한 친구 크리톤에게 왜 자신이 독배를 받아 마셔야 하는지를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소중히 여기고 가르친 가치를 굳게 지키고 또한 사람들에게 참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철학자의 사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대화에서 “가장 중히 여겨야 할 것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잘 사는 것”이라는 너무나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그에게 잘 사는 것은 그저 목숨을 부지하거나 욕망과 이익을 충족시키는 삶이 아닙니다. 그가 ‘혼을 돌봄’이라고 부른 덕스럽고 정의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은 보이는 세상에만 매이는 삶이 아니라,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을 볼 줄 알고 선택하는 삶을 뜻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짤막한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큰 감명을 줍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육신의 눈으로만 보려 하고 손에 잡히는 이득으로 가늠하려는 이들에게는 그 나라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삶과 죽음으로 보여 주신 가치를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미 또한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잘 사는 삶’을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잘 사는 삶’은 하느님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나라는 이웃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일상 속에 깃든다는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 매일미사에서 옮김 (141113) |
'◐ † 사랑과 믿음 ◑ > 오늘의 기도·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41115(토)-오늘의 묵상(기도) (0) | 2014.11.15 |
|---|---|
| 141114(금)-오늘의 묵상(참된 종말론적 윤리) (0) | 2014.11.14 |
| 141109(일)-오늘의 묵상(성전 정화) (0) | 2014.11.09 |
| 141108(토)-오늘의 묵상(진정한 사목자, 진정한 교회 공동체) (0) | 2014.11.08 |
| 141107(금)-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구원을 얻는 지혜를 간직해야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0) | 2014.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