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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1006(월)-덧셈 행복을 살아야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10. 6. 09:54
2014년 10월 6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제1독서 갈라 1,6-12

제 여러분, 6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8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9 우리가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제 내가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
1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복음 루카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네요. 즉, 덧셈 행복과 뺄셈 행복이 그것입니다. 우선 덧셈 행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태어날 때의 자기 모습을 늘 떠올립니다.

‘나는 태어날 때 아무것도 안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야.’를 생각하면서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감사합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도 있고, 일자리도 있고, 차도 있고, 집도 있고.... 계속해서 더하고 있습니다. 바로 덧셈 행복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생각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차도 없고, 집도 없고, 시간도 없고, 주위에 좋은 사람도 없어.....’ 물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여기에 모자라고 부족한 것은 늘 불만이고 불평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뺄셈 행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습니까? 누가 더 행복할까요? 당연히 뺄셈 행복이 아니라 덧셈 행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덧셈 행복이 아닌, 뺄셈 행복을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다 면서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을 더하고 더해서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그래서 더욱 더 행복하게 잘 살라고 이웃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이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입니다. 이웃의 장점과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면서 함께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덧셈 행복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이웃의 단점과 부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뺄셈 행복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사제, 레위인은 강도를 만나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여러 이유를 생각했겠지요. 피를 흘리는 이 사람을 통해서 자신이 부정해질 수 있다는 생각, 당시에 이렇게 누워 있다가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바쁜 자신의 일정을 생각하면서... 등등의 이유를 붙여서 그들은 외면했을 것이고, 주님의 뜻인 사랑 실천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즉, 그들은 뺄셈 행복으로 나아갔던 것이지요.

이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는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얼른 치료해주고 여관에 데려가 돌보아 줍니다. 이것이 바로 덧셈 행복입니다.

우리 모두 덧셈 행복을 살아야 합니다.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 그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라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착한 사람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한 사람은 늘 착하다.



내곁에당신(정철, ‘한 글자’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나는 너를 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문장은 ‘너는 나를 잊었어.’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문장은 ‘나는 너를 못 잊겠어.’

너 없으면 나는 문장 하나 만들 수 없는 불완전명사.

내 곁에 당신. 인생은 이 다섯 글자면 충분.

아니, 내곁에당신. 띄어쓰기도 없애 버리고 싶어.

어떠한 문장을 쓰고 계십니까? 아름다운 문장 대신에 슬프고 안타까운 문장을 자주 쓰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너’라는 존재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행복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