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 66,10-14ㄷ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 때문에 애도하던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크게 기뻐하여라. 11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리라. 너희가 그 영광스러운 가슴에서 젖을 먹어 흡족해지리라. 1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영화를 넘쳐흐르는 시내처럼 끌어들이리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13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14 이를 보고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 그리고 주님의 종들에게는 그분의 손길이 드러나리라.
제2독서 1코린 7,25-35
형제 여러분, 25 미혼자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내놓습니다. 26 현재의 재난 때문에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7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그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또 처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인하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면하게 하고 싶습니다.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2 나는 여러분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33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4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5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 18,1-5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작가가 우리의 마음을 은에 비유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갓 태어난 아이는 순수한 은의 모습이지만,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자라면서 이 순수한 은에 다른 성분들이 첨가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순수한 은은 독성이 전혀 없는 깨끗함 그 자체이지만, 이 은은 아주 적은 양의 다른 것만 첨가해도 맹독성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은으로 만든 제품들을 보면 그냥 공기 중에 가만히만 놔두었는데도 새까맣게 변하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 역시 이렇다는 것이지요. 처음 태어났을 때에는 은의 성질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깨끗하고 순수했지만, 다른 것들이 첨가되면서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대신 독성을 간직하면서 점점 검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크게 공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처음 태어났을 때의 깨끗함과 순수함을 다시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불가능할까요? 다시 처음 태어났을 때의 깨끗함과 순수함으로 어떻게 되돌아갈 수 있냐고요?
저는 은으로 된 성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멋진 성작이지요. 그런데 본당 사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성작을 사용할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잘 싸서 보관만 하고 있을 뿐이지요. 언젠가 이 성작을 사용할 기회가 있어서 꺼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은색의 깨끗함은 전혀 보이지 않고 새까맣게 색깔이 변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새까맣게 변했다고 성작을 버렸을까요? 아니지요. 성작을 비롯한 제구 등을 닦는 약을 이용해서 닦으니 다시 처음의 깨끗한 은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깨끗함과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셨지요. 미사 때의 깊은 성찰을 통해 그리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문제는 그 깨끗함과 순수함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스스로도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녀는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봉쇄 수도원인 갈멜 수도원에 입회하셨고, 스물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돌아가셨지요. 아주 짧은 수도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데레사 성녀는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면서 깨끗함과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또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셨습니다.
이 깨끗함과 순수함을 주님께서도 강조하시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깨끗함과 순수함을 생각해보십시오. 이미 글러 버렸다고 포기하지 말고, 새까맣게 변한 내 마음을 다시 처음의 순수한 상태로 되돌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성인의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앙드레 말로).
부자와 빈자의 생각 차이(강승우, ‘새벽편지’ 중에서)
부자 - 내가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빈자 - 내가 가난한 이유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부자 - 이 물건을 살 방법을 궁리한다. 빈자 - 이 물건을 살 능력이 없다.
부자 - 나는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든다. 빈자 -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부자 - 십원짜리 한 개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빈자 - '푼돈 아껴서 뭐하냐'며 맘껏 쓴다.
부자 - 투자 실패는 내 생각이 짧았기 때문이다. 빈자 - 투자해서 실패하면 감추거나 혹은 남 탓으로 돌린다.
내 마음에 따라서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내 마음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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