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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 10,17-24.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의 모습을 알려 주었습니다. 가난과 비천함을 스스로 선택하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빠졌을 때 체험하는 순수한 기쁨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헤세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성인에 대한 전기를 읽으며 프란치스코가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움직였는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이 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간결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성인에게서 우리가 향해야 하는 근원적 갈망을 봅니다. “우리가 진짜 살고 있는 곳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곳이 아니라, 무엇을 희망하는지도 모르면서 희망하는 그곳이며, 무엇이 우리를 노래하게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노래하는 그곳이다. (중략) 하느님, 그토록 가난하신 하느님! 빛 속에서 빛이 지글거리고, 침묵이 침묵에 대고 속삭인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도 그처럼 침묵에 대고 말한다. (중략) 그는 사랑에 빠져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연인에게 말을 한다. 오직 연인하고만 말한다.” 하느님은 가장 가난하시며 가장 높으신 분, 그러기에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작가는 그러한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프란치스코는 한 ‘어린아이’이자 ‘어릿광대’여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무한하신 하느님께서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후렴이나 가난한 이들이 흘린 피, 소박한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만 머무르실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안에 하느님을 붙잡아 둔다. (중략) 하느님은, 아이들만 알며 어른들은 모르는 무엇이다.” 지금은 먼 이국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는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의 동창 신부가 언젠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토로하던 순간이 문득 떠오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우리를 가난한 자유로 초대합니다. 그 초대가 우리 마음을 두드린다면 우리에게서도 그러한 갈망의 불꽃이 타오른다는 신호일 것입니다. - 매일미사에서 옮김(14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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