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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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905(금)-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9. 5. 07:55
2014년 9월 5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코린 4,1-5

형제 여러분, 1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 루카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아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한 유람선이 태평양을 지나가다가 풍랑을 만나 재난을 당하여 좌초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조 헬기가 와서 사다리를 내리니 자매님 한 분과 형제님 열 분이 동시에 사다리를 잡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헬기가 구할 수 있는 인원은 딱 10명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장은 어려운 부탁의 말을 던집니다.

“제발 1명은 손을 놓으세요. 안 그러면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눈치만 보면서 차마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 한 명의 자매님께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는 평생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또 자식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한 번 더 희생 못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제가 잡은 사다리를 놓겠습니다.”

이 말에 남자들은 너무 기쁘고 좋아서 모두 힘차게 박수를 치다가 떨어지고 말았다고 하네요. 아무튼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했던 자매님만 구조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웃으며 넘길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 안에 있는 모습들을 지적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즉, 자기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 또한 자신이 불리할 때에는 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때로는 남을 깎아내리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 현 교황님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모아 놓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다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구절이 크게 와 닿습니다.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거룩하게 살지 못하게 하고 동시에 사랑의 완성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뒷담화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빨아 먹는 캐러멜처럼 좋거나 재밌어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우리 자신을 불쾌하게 하고, 우리 역시 망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뒷담화가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들을 험담하는 말이고, 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말이며, 자신의 불리함을 만회하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 성인의 길에서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요한의 제자와 바리사이의 제자들과 달리 단식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의 비판은 그럴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부정적인 말 그 자체, 즉 뒷담화가 그들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을 감히 비판한 것입니다.

지금도 뒷담화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주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거든 낙심하지 마라(괴테).



포용하는 사람(정현천,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중에서)

결혼할 때 평소 외삼촌처럼 생각하고 존경하던 분이 글씨를 써서 액자에 담아주셨습니다.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 인지찰즉무도(人至察則無徒)]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고, 사람이 너무 따지면 따르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당시 20대의 젊은이였던 제겐 이 문구가 마치 “세상과 타협해 편하게 살라.”는 충고 같았습니다. 그래서 액자를 다락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액자 생각이 나서 포장을 뜯었습니다. 새로 바라본 그 글씨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적당히 편하게 살라는 소인배를 위한 충고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것을 감싸고 아우르고 품으라는 호연지기의 충고였습니다. 그분의 참뜻을 20년이 지나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물은 맑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물이 지나치게 맑아서 먹이가 없고 적을 피해 숨을 곳도 없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까다로운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너그러운 사람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원리원칙만 앞세워 사소한 것까지 따지고 단죄하려 들면 사람들은 등을 돌리게 됩니다. 특히 깨끗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도를 지나쳐서 남을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그것은 독극물과 같이 위험합니다. 남들에게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됩니다.

이 글을 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무조건 반대하고 단죄하려 했던 내 자신의 작은 마음 역시 반성하게 되네요. 원리원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 중요합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