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712(토)-무관심의 삶이 아닌 사랑으로 하나 되는 우리-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7. 12. 06:17
2014년 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이사 6,1-8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3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내가 아뢰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복음 마태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며칠 전에 방송 때문에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전철을 탔는데, 전철 안에서 문득 알 수 없는 삭막함이 느껴졌습니다. 즉, 서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었지요. 제가 학생 때만 해도 전철을 타고 있으면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분들도 자주 만났습니다.

“학생은 어디가?”, “고향은 어딘데?”, “뭘 공부하지?”, “요즘 시국이 뒤숭숭한데 학생은 어떻게 생각해?” 등등…….

시시콜콜한 평범한 이야기부터 복잡한 요즘 시국문제에까지 물어보는 분들이 다양했었고, 이런 분들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다들 혼자입니다. 혼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지요. 그리고 아마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할 것입니다.

하긴 요즘에는 눈빛만 마주쳐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지요. 제가 전에 전철 안에서 어떤 형제님과 이상하게도 계속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 알아요?”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봐서도 안 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철저히 모르는 타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이 전철 안에서 누군가가 쓰러지면 몇 명이나 관심을 가질 것인가가 궁금해집니다. 무관심에 빠져 있어서 혹시 쓰러진 것도 모른 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까요? 하긴 독고노인이 자기 집에서 숨진 채 몇 달 만에 겨우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게 들리기도 합니다.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 없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해서는 ‘관심 많음’일까요? 아닙니다. 보이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해서는 더욱 더 관심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나 혼자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님도 필요 없고, 내 이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세상의 삶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삶, 바로 구원의 삶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주님과도 또 나의 이웃에게 무관심으로 일관된 삶이 아닌 함께 사랑으로 하나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이 특히 많이 와 닿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무관심의 삶이 아닌 사랑으로 하나 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장 중요한 나의 구원을 위해서 라도요…….

사람이 따뜻한 마음을 잃는다면 무엇보다는 그 자신이 인생이 외롭고 비참하게 된다(칼 힐티).



막대한 비용 VS 간편 사용(‘사랑밭 행복편지’ 중에서)

미국의 NASA(미우주항공국)는 무중력상태에서 볼펜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볼펜은 중력으로 잉크를 밀어내는 원리이므로 중력이 없는 세계에서 글씨를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우주공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볼펜을 개발했다. 그런데 그 무렵 소련에서는 무엇을 사용했을까?

연필을 사용했다.

엄청난 비용을 들어 개발한 볼펜. 그러나 적은 비용으로도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입니다. 만약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면 그런 낭비는 하지 않았겠지요.

서로 함께 할 때 쓸데없는 낭비를 벗어나서 더 큰 가치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