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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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528(수)-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삶-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5. 28. 09:21
2014년 5월 28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 17,15.22 ―18,1

그 무렵 15 바오로를 안내하던 이들은 그를 아테네까지 인도하고 나서, 자기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전하라는 그의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32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33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그들이 모인 곳에서 나왔다. 34 그때에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가 있고,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18,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복음 요한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식물도 음악을 좋아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즉, 과학의 힘을 빌어서 음악에 따라서 식물이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음악을 들려주고 식물체 내의 전류를 재보면 심하게 떨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떨림에 의해서 식물의 성장이 눈에 띄게 촉진된다는 것이지요.

식물에 귀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분이 계십니까? 그런데 귀가 없는데도 음악이 식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오감을 뛰어넘는 것들은 이렇게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오감을 뛰어넘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야 믿겠다고 말했던 토마스 사도의 모습을 늘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진리는 우리의 오감을 뛰어넘으며, 심지어 우리의 생각까지도 뛰어넘을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겸손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뛰어넘으시는 주님의 활동을 보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뛰어넘어 많은 사랑을 주고 계십니다. 문제는 그 사랑을 잘 느끼지 못하지요.

언젠가 어떤 형제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저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즉, 제 취미인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이 형제님께서도 자전거를 너무나도 좋아했지만, 지금 현재 병으로 인해 자전거를 안타깝게도 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자전거를 타고서 부산 다녀온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정말로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다며 큰 부러움을 표시하십니다.

솔직히 지금 현재 저는 부산 다녀온 것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노력과 시간만 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꿈꾸던 소원으로 매우 소중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저는 누군가가 꿈꾸고 있었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누가 주셨습니까? 바로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제 자신도 느끼지 못한 사이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시지 않고 남겨 두시지만, 전혀 알려 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드러내 주시도록 하는 방법을 택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의 마음에 사랑을 쏟아 부어 그들을 영적으로 만듦으로써, 그들이 전에 육으로만 알던 아들이 아버지와 동등한 분임을 알아보게 하는 방식으로 아들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주어지기 전에 제자들은 여전히 율법의 그림자에 매여 있는 노예였으나, 성령께서 내려오신 뒤 성령의 가르침과 단련으로 모든 진리로 인도되었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큰 선물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최고의 선물을 주시듯, 우리 역시 내 이웃에게 최고의 선물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진리의 영을 따라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젊을 때 도전하라.’라는 말은 틀린 것이다. 도전할 때 젊은 것이다(김은주).



비난도 받아들이면(‘좋은 생각’ 중에서)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6,4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44,0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시골에서 빵 공장을 하던 아키모토 요시히코는 뉴스 속보를 접하고 마음이 아팠다.

‘이렇고 있을 게 아니라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

아키모토는 빵 판매를 중단하고 공장에 남아 있는 밀가루로 밤새 빵을 만들었다. 빵을 트럭에 싣고 고베에 도착해 난민들에게 빵을 나눠 주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불평을 터뜨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걸 줘야지 빵을 주면 뭐해?”

“차라리 건빵이 낫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작은 기쁨이라도 주려고 밤새 일했고 졸음을 참아 가며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보답이 고작 이거란 말인가?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곰곰 생각해 보니 그들의 불평도 일리가 있었다. 빵 보관 기간은 길어야 일주일이었다. 여름철에는 이틀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그래! 이왕 착한 일을 할 거라면 제대로 해 보자!’

아키모토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 않는 빵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가 시행착오 끝에 만든 것은 통조림 빵이었다. 통조림 안에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한 화지를 깔고 살균한 빵과 탈산소제를 넣었다. 보존 기간이 무려 3년인 이 빵은 재난 지역의 구호품, 우주 식량 등 많은 곳에 요긴하게 쓰인다. 그는 듣기 싫은 말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좋은 일을 하고도 비난을 받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그 비난 역시 나를 성장시켜주는 또 다른 거름도 될 수 있네요. 무엇 하나, 나를 위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글입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