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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527(화)-주님의 배려와 사랑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5. 27. 07:57
2014년 5월 27일 부활 제6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복음 요한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산을 다녀왔습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인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산입니다. 산 정상에서 도시를 바라보며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높게만 보였던 빌딩도 낮아 보이고, 복잡하기만 했던 길이 너무나도 단순하게 보입니다. 빌딩 숲에 쌓여 있어서 답답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위에 올라가서 보니 별 것 아니네요. 또한 많은 차량들로 인해 꽉 막힌 도로로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야가 넓어진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불편함, 답답함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제 자신이 불평불만을 던질 때를 떠올려 봅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였습니다. 조금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데, 바로 코앞에서 바라보고 내게 피해가 된다면서 거부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 편이셨지요.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죽음을 겪으면서도 우리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종종 보여주셨던 당신의 전지전능하신 힘을 그 순간에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까지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배려와 사랑을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보였던 그 모든 교만과 이기적인 마음들이 부각됩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주님은 이렇게 배려하시는데, 우리는 내 눈 앞에 놓인 것들이 가장 큰 고통이며 시련이라고 말하면서 불평불만을 던지기에 바빴으니까요.

주님의 배려와 사랑은 부활 하신 뒤에도 또 다시 보여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제 안 계실 것이라는 사실과 그들을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일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큰 기쁨을 얻었고 또한 커다란 희망도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 자기들 곁을 떠나서 승천하신다는 생각에, 그래서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고통스러운 수난과 죽음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당신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도 이렇게 많이 부족한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무책임하게 “너희들 알아서 해!”라고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대신 이 사람들을 보호할 성령을 약속해 주시지요. 이 보호자 성령은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신다고 합니다. 성령을 통해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제시하신 길을 올바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배려와 사랑을 보고도 주님 곁을 떠나야 할까요? 계속해서 내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급급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참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내주신 협조자, 성령을 통해 우리 모두는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건 불운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건 불행이다(알베르 카뮈).



성 알폰소 성인의 거룩한 묵상 중에서

한번 세상을 떠나보십시오.
이 세상을! 그리고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이 세상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으로 당신을
위로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인들은 이 세상에
큰 유혹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그들은 자신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에 맡김으로써 참 평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느님과 하나 되어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에서 마음을 멀리해야 합니다.

하느님만으로 충분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느님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되길 기도합시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