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에페소
1,11-14
형제 여러분,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복음 루카
12,1-7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저께 인천교구의
원로사목자 신부님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부님의 일화 한 가지를 듣게 되었지요.
신부님께서는
본당신부로 사목하시면서 동시에 본당의 유치원을 운영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치원생들의 학부모에게 이러한 말씀을 반드시 하셨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유치원에서 뭐 배웠니?’ 라고 질문하지 마십시오. 만약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면 다른
유치원으로 가십시오. 대신 ‘오늘 무슨 좋은 일을 했니?’라고 물어 보십시오. 우리 유치원은 지적 능력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인성 교육을 잘
시키는 곳입니다.”
신부님의 이 말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즘 세대를 보면 인성교육은 뒤로 물러나 있고, 대신
지적 능력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인성 교육의 결과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요. 그러나 지적
교육은 성적을 통해서 겉으로 잘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게 지적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나 봅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또 국어도 잘 모르는 아이에게 다른 나라 말을 가르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들. 과연 어떤 것이 더욱 더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엄마들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지요.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남들도 다 하는 교육을 내 자식만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불안하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참 진리일 수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지적
교육만을 강조하는 것, 이것 역시 하나의 위선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지적 교육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신 따뜻한 사랑의 교감을
통해서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힘이 인성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적 교육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성 교육입니다. 그런데 인성 교육은 남들만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대신 겉으로 보이는 또 성공의 길로 이끌어줄 것만 같은 지적 교육만을
한다면 이것은 분명 위선자들을 양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힘주어 말씀하신 것이 ‘위선’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위선의 예를 바리사이들을 통해서 말씀하시지요. 그들은 자신의 경건함과 의로움을 다른 사람 앞에 과시만 하려고 하지요. 그러나 마음으로는
불경건하고 불의로 가득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모습,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위선자의 모습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을 강조하면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는 늘 뒷전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오늘 어떤 좋은 일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소박한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도전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무게 중심을 찾게 하는 선물이다(오프라 윈프리).
사무실에 있는 인형. 이렇게 효과를 내니 있어보이죠?
내 마음의 깊이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뜰 수 있다고 합니다. 물이 얕으면 작은 배 하나 띄우기도 벅차다고
하지요.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내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나의 마음은 얼마나 깊을까요? 내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큰 고통과 시련 역시도 나의 넓고 깊은 마음을 받아들여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좁고 얕으면
아주 자그마한 일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것도 다 내게 부담이 되는 일로만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넓고 깊은 바다와
같은 큰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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