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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04(화)-악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2. 9. 4. 10:54
2012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코린토 2,10ㄴ-16

형제 여러분, 10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복음 루카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요즘 정치권이 아주 시끌벅적합니다. 올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고를 위해 각 당에서는 대통령 후보 경선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예전에는 정치라는 것에 관심도 많이 가지고 바라보았지만, 요즘에는 이 정치인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색안경을 쓰고 바라볼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이런 말을 쓰지요.

“국민들의 생각이 이렇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생각을 물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 제가 대신 물어봐도 이러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생각은 이렇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지금 현재 모든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의로운 사람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러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각종 비리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정치인들이 마치 국민이라는 남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욕심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 때문에’라는 말 역시 불신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전임 대통령 때문에, 또 상대 당 때문에, 그리고 정치인 누구 때문에 등등의 말로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는 것 역시 그들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이 역시 남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을 겉으로 치장하려는 욕심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이 세상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대신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면 약간의 거짓은 애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주님께서는 약간의 악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님께 소리를 지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자기를 그냥 놔두어도 크게 변할 것이 없으니 상관하지 말고 그냥 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말씀하면서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또 당의 이익을 위해 약간의 거짓을 말하기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 역시 생활을 하면서 외적인 이익을 위해 약간의 거짓말은 괜찮다는 식의 타협을 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서는 끊임없이 “무슨 상관이 있냐?”라는 유혹이 계속됩니다. 그때 우리들은 과연 예수님처럼 단호하게 내게서 나가라고 명령하고 있는지요? 혹시 ‘그래,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식의 타협을 하여, 내 안에 악의 뿌리를 계속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악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님께 청합시다.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 이어져 생의 불빛을 키운다(더글라스 리튼).



어제 동창신부와 점심식사로 복 중탕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었어요.


자신의 내면 가꾸기

뉴스를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외모 가꾸기에 지나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성형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연예인도 텔레비전을 통해 많이 목격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를 가꾸지 않는 사람은 마치 자기 관리가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외모 가꾸기가 정답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외모 가꾸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외모라는 것은 어느 한계가 분명히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에 한 번 어떤 책에서 본 글을 이곳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마흔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외모의 평준화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화장을 하나 하지 않으나 똑같다고 하지요. 사실 자기 나이 대에 맞는 외모를 갖추면 그만입니다. 아니 나이 대에 맞지 않는 외모를 갖추고 있지 않다 해도 그것이 크게 자랑할 것도 또 부끄러워할 것도 아닙니다. 그 외모를 가지고 몇 백 년 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얼굴입니다. 주님께서는 외모를 잘 가꾸었다고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얼굴을 아름답게 잘 가꿔야 영원한 생명이 있는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짧다고 할 수도 있는 이 세상의 삶만을 위해 자신의 중요한 내면은 팽개친 것은 아니지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