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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27(화)-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2. 3. 27. 09:23
2012년 3월 27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민수기 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복음 요한 8,21-30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부터 중학생 때까지 다녔던 성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당하고 인연이 많은지 보좌신부로 1년 동안 생활도 했었지요. 또한 그 성당에서 구반장 교육을 2년 동안 매달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그곳 본당에 보좌신부가 없어서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만 새벽미사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성당과 달리 어떻게 보면 오랫동안 다녔던 성당이지요. 더군다나 초등학생 때에는 복사를 서며 제대 가까이에 있었고, 보좌신부 때에는 신부로 제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또 강의할 때 역시 제대 옆 독서대에서 했으니 이때 역시 제대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새벽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문득 ‘이곳 성당의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예수님 얼굴이 어떠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보아왔던 십자가였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인상이 어떤지, 또 예수님의 못 박힌 발 모양이 어떤지도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머리가 나쁜 것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신경 써서 보지 않음이 더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냥 보통의 십자고상을 바라보듯 아래에서 위로, 또 좌에서 우로 쳐다보기만 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시선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의 사람들 표정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안타까움도 슬픔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요. 무표정한 모습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그러했던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뜻만을 내세우면서 살아간다면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의 뜻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냥 무표정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 특히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뜻이 제일 중요했기에, 자신의 뜻과 반하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즉, 이 천 년 전의 그들처럼 무표정의 모습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겪으신 그 수치심과 고통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주님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의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주님의 길에 함께 동참하게 되는 영광의 자리에 올라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시기도 거의 막바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주님과 얼마나 함께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주님의 말씀과 행실에 대해 전혀 관심 없이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면서 남은 사순시기를 더욱 더 뜻 깊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조정래).


어제 동창모임에서 갔던 당구장 이름. 주인이름을 딴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가게를 그냥 인수한 것이라 전의 이름 그대로 쓰고 있는 거에요." 문제의 해답은 사실 간단한 곳에 있었습니다. ㅋㅋ


포기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텔레비전 보는 것을 끊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자꾸만 텔레비전으로만 시선이 가기 때문이지요. 처음 시작은 ‘텔레비전에서 뭐 하는 지 좀 볼까?’라는 마음에서 잠시 뒤에는 ‘이것까지만 보고 하자.’라는 마음으로 바뀐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특히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를 보겠다고 해야 할 일들을 뒤로 미룬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부터 텔레비전 시청을 스스로 금했지요. 사실 주말에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꾹 참고 그 시간에 대신 책을 읽는데 소비를 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주말에만 2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난 뒤에는 ‘괜히 봤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책을 보고 난 뒤에는 ‘잘 했다’라는 생각과 함께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포기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것들을 계속 움켜잡으려고만 할까요? 그 모습이 우리의 생활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듭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