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오늘의 기도·묵상

111102(화)-오늘의 묵상(삶)

두레골 2011. 11. 2. 21:30
복음 마태오 11,25-30

1.
저울에 행복을 달면 /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
불행 49% 행복 51%면 /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
행복의 조건엔 /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
…… //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
또 불행하게 합니다. /
나는 오늘 그 1%를 /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놓았습니다. /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행복하다고 …….

이해인 수녀님의 “1%의 행복”이라는 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의 무게를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기울기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삶이라는 것이 온전히 행복할 수도
그렇다고 온전히 불행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말 못할 슬픔이 잠겨 있고,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희열과 행복이 감추어 있습니다.
사실 행복과 불행은 우리 마음이 어디에 기울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영성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야 하는 신앙인은 늘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걷는 사람입니다.
1%의 차이가 우리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 말은 성과 속의 저울 양편에 놓인 우리 마음처럼 1%만 더 주님께 관심을 기울여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의 삶에는 가난해도, 슬퍼도, 때로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세상이 주는 행복과 다른 행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서 1%의 마음 기울기에 달려 있습니다.

2
“주님, 또 한 분의 교우를 주님께 보내 드립니다.
이 사람이 살아온 시간 동안 지은 죄는 묻지 마시고
그가 살아 내야 했던 삶의 멍에만 생각해 주십시오.
설령 그가 주님께 충실한 믿음의 삶을 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에게 운명처럼 부여된 삶의 멍에를 한평생 지고
살아 냈다는 그것만으로 그는 아름답고 위대해 보입니다.
주님, 저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본당에서 장례 미사를 드리고 고인과 장례 행렬이
성당 문을 빠져 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독백처럼 바치는 저의 기도입니다.
장례 때마다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는 생각할 것 없이
한 사람의 영혼을 주님께 보내는 순간은
그가 살아온 일생이 그저 장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사실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해서 ‘잘 살았다’ 또는 ‘못 살았다’ 할 때,
주님 앞에서 그 차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판단과 평가일 따름이지요.
주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당신의 자녀가 비록 이승에서 못난 삶을
살고 돌아왔다고 해서 주님께서 당신 자녀에게 분노하시고
섭섭해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 눈에는 그가 살아왔던 그 모든 이야기가,
설령 우리 눈에는 온통 죄스러운 삶일지라도,
주님께서는 한계와 약함을 가지고 최선을 살았던
그의 장한 모습만을 바라보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도, 우리 자신도,
주님의 마음이 되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부족해 보이고 결점투성이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가 가진 약함과 한계를 가지고
그 나름대로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죄스럽고 못난 모습도 있는
그대로 주님께서는 사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모든 경험을 다 하신 분이시기에
누구보다 우리의 약함과 한계를 잘 아십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면 빛 속에서 사는 삶이 됩니다.
곧 우리 인생의 멍에는 가벼워집니다.

3.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 속이며 살아왔다. //
이는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게 / 무엇보다도 두려워서였다. //
나의 한 치 마음 안에 / 천 길 벼랑처럼 드리운 수렁 //
그 바닥에 꿈틀거리는 / 흉물 같은 내 마음을 /
나는 마치 고소 공포증 / 폐쇄 공포증 환자처럼 /
눈을 감거나 돌리고 살아왔다.
실상 나의 지각(知覺)만으로도 / 내가 외면으로 지녀 온 /
양심, 인정, 명분, 협동이나 / 보험에나 들 듯한 신앙생활도 //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

더구나 평생 시 쓴답시고 / 기어(綺語)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달까!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나는 /
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 /
저런 추악 망측한 나의 참모습과 /
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 /
하느님, 맙소사!

구상 시인의 “임종 고백”(臨終告白)이라는 시입니다.
닥쳐올 죽음을 앞두고,
곧 하느님 앞에 서게 될 그 본래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두렵다는 고백입니다.
이 시가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한 인간의 약하고
죄스러운 모습을 고백하는 진실성 때문입니다.
병원 사목을 하셨던 어느 신부님이 평소 약점을 보이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더 추한 모습을 보이며 죽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앗아 가는 죽음의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슬기로운 처녀처럼 깨어 사는 삶을 위해
날마다 마지막 날처럼 임종 고백을 하듯 살면 어떨지요?
자신이 가진 약점과 결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죄스러운 삶을
주님께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며 사는 것이지요.
우리 삶은 결점과 죄를 덮어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결점과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진실함으로 아름다워집니다.
살아 있는 꽃이 향기를 내는 것처럼 깨어 있는 삶이 아름답고 향기를 냅니다.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땅콩님 올리신 글 옮김 (11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