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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오늘의 기도·묵상

111021(금)-오늘의 묵상(탐욕)

두레골 2011. 10. 21. 11:31
복음 루카 12,54-59


우리는 올해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그 여파로
몰려온 쓰나미(해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경험했습니다.
쓰나미에 따른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는 물론이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로
지금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사고로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고,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다 표면에 부는 폭풍우보다 바닥을
흔들어 놓는 쓰나미가 훨씬 더 무섭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서도 표면에 이는 풍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삶의 뿌리를 흔드는 정신적 쓰나미입니다.
곧 왜곡된 우리 인간의 가치관입니다.
실제로 인간 사회가 겪는 대재앙 뒤에는 자연의 재해보다
인간의 탐욕, 곧 정신적 쓰나미가 숨어 있습니다.

대재앙을 몰고 온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협하는
크고 작은 원전 사고를 경험하고도 사람들은
현실의 이익과 편리를 내세워 끊임없이
핵 발전소 건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군가 핵 발전소 건설은
“화장실 없는 집을 짓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어쩌면 지구의 수명만큼이나 영구적이라 할 수 있는
핵폐기물의 방사능 물질이 땅속 어딘가에 계속해서
쌓여 가는데도 아무런 문제의식도 저항감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서운 정신적 쓰나미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시대에 어디서 어떻게 이만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대안 없이 원자력을 반대한다면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고 항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동 장치 없는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누군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후쿠시마 원전의 교훈처럼
결국 가까운 미래에 후손들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우리가 죽음의 에너지를 반대할 때
지구 환경에 피해가 없는 청정 에너지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에 끊임없이 도전할 때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사회의 정신적 가치가 살아납니다.

이미 독일이 2022년까지 원자력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유럽의 선진국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라는 오늘 복음 말씀을 우리 모두 깊이 새겨야 할 때입니다.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땅콩님 올리신 글 옮김 (1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