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국이 정말 있는 것일까? 천국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과학이나
논쟁으로 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다. 복음에 나타나는 진리는
객관적 검증이 아니라 개인의 결단에 호소한다.
진리는 삼단논법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으로 입증될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라는 객관적 물음을 던지는
제자들을 제자직에 초대하시며 "와서 보아라." 하고 말씀하신다.
다행히 우리는 이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천국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믿음이란
우리가 갈망하는 사물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사물을 증언한다.
우리가 성인들의 체험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
그들의 증언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성인들은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을,
천상 빛으로 세상의 평범한 삶을 인식했다. 장 피에르 드 코사드가
성찰한 것처럼 신앙은 지상을 낙원으로 변화시킨다.
신앙으로 우리는 천국에 가까이 있다는 기쁨에 넘친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하느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천국' 이라고 한다.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시므로 매일의 삶이 천국과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만큼 우리는 참행복에 이를 수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신국론'을 마무리하면서 참행복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천국에서 고요히 머무르게 될 것이다. 보고 사랑하며, 사랑하고
찬미하게 될 것이다."
수도원이나 교회에서 산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성인들은 대부분 수도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며 복음을 실천했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고 일찍 일어나 성경 말씀을 묵상했으며,
묵주기도를 드리고 양심성찰을 했다. 영적 지도자나 수도회 장상들의
권고에 순종하며 살았다. 신앙 공동체와 함께 지냈으며 교회 전례력에 따라
단식하고 자신을 새롭게 하며 축일을 기쁘게 맞이했다. 성인들의 삶을 깊이고
성지를 순례하며 성사생활을 했다. 하느님한테서 멀어지게 하고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차단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것 하나 하느님과 멀어지지 않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신학자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왜 거룩해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 애써 들어갔다 해도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비로 그를 천국에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가 참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천국이란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무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토머스 머튼이 말했듯이 '천국의 문은 어디에나 있다.' 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빛 가운데서 바라보면 지상의 삶은 우리가 거룩해지는 만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만큼 '행복한 자리' 가 된다.
-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로버트 엘스버그/바오로딸- 에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09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