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요한 7,1-2.10.25-30 예수님에 대한 청중들의 발언은 유치합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예수님의 출신지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메시아가 아니라는 표현입니다. 출신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지요? 다 큰 어른이 너무 순진해도 문제입니다. 복음의 유다인들은 아직도 어린이의 믿음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는 ‘어린이의 모습’으로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기만의 ‘살아 있는 믿음’을 갖지 못한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바람이 불면 흔들립니다. 아무리 오래된 신앙이라도 어른의 믿음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작은 유혹에도 헤맵니다. 작은 충동에도 쉽게 반응합니다. 그렇다고 아이의 세계를 건너뛰어 곧바로 어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과정을 철저히 거쳐야만 다음 과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시련과 고통을 주십니다. 보이지 않는 십자가로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이의 신앙에서는 ‘받는 것’이 기쁨입니다. 그러나 어른의 신앙에서는 ‘깨닫는 것’이 기쁨입니다. 몸은 어른인데 믿음은 어린이로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토록 많은 기적을 보고 들었지만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삶의 고통’에서 기적의 모습을 찾아내야 어른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천진암 기동항아리에서 소리님 올리신 글 옮김 (090327) |
'◐ † 사랑과 믿음 ◑ > 오늘의 기도·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90330(월)-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다고 느낄 때 (0) | 2009.03.31 |
|---|---|
| 090327(금)-하느님, (0) | 2009.03.27 |
| 090327(금)-오상의 비오 신부님 어록에서 (0) | 2009.03.27 |
| 090326(목)-주 예수님, (0) | 2009.03.26 |
| 090326(목)-오늘의 묵상(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 (0) | 2009.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