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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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오늘의 기도·묵상

090325(수)-사순 제4주간 수요일의 기도

두레골 2009. 3. 25. 10:5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하느님 말씀 *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 (요한 5, 24)


** 성찰 **

죽음의 상태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 말씀의 현존에 따라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의 상태다.
비본질적이고 노예적이고 스스로 분열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상태다.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건너가게 하는 것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다.
이를 요한은 새로운 방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혼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둠 속에, 거짓말 속에, 노예의 처지에, 죽음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이런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만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할 경우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믿을 수 없는 환영에 빠지게 된다. 이 환영은 어둠이며 거짓말, 노예와 죽음이다.

이는 의심할 나위 없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관점이다.
우리는 이런 관점을 일상 체험에 부드럽게 적용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관점을 한번쯤은 철저하게 생각해 보고,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우리에게 해당되는지를 스스로 묻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 어두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령께서 우리를 어떻게 자극하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런 상태에서 우리를 해방하기를 원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가?
지금 나의 이런 모습이 하나의 부르심과 소명이라는 분명한 확신으로
나의 삶과 나의 역사를 긍정하고 있는가?

시대의 목소리는 곧 하느님의 목소리다. 나는 내 개인적 삶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따라 살고 있는가? 그것을 말씀의 빛으로 해석하여 찬미와 감사로
받아들여야 하는 소명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행복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스스로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이 왜 내 삶의 중심이 되지 않는가?
왜 나는 나의 삶과 그 여정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역사로부터 나에게 마주 들려오는 말씀이 다른 식으로 울리기를 바라고 있는가?


*** 기도 ***

오 하느님,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 당신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생명은 당신의 아들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고
그 아들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오 하느님, 제가 하느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드리나이다.
(1 요한 5, 4-5, 11-13 참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0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