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마태 9.1-8 내 몸을 내 맘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처럼 불편한 것은 없을 겁니다. 중풍은 혈관에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해서 몸이 마비되는 병입니다. 그래서 중풍 병자는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고, 삶에 대한 좌절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을 버리기 힘듭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를 청하려는 것은 육체적 건강과 더불어 병으로 인해 비뚤어져 버린 마음의 죄를 용서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병이 죄의 결과라고 여겼던 유다인들에게 치유는 하느님의 자비임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율법에 가두어 두려던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단언하는 모습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치유될 수 없는 병을 가진 이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하느님께만 유보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자신들의 생각의 틀에 가두어 두려던 율법 학자들 앞에서 죄를 용서하는 행위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하십니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는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에는 하느님의 능력이 담기기도 하지만, 악의 권세를 퍼뜨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참된 치유는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잃고 마는 육체적 치유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까지 바꿀 수 있는 영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그 사람을 살리는 하느님의 능력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 매일미사에서 옮김 (16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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