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50505(화)-가장 궁극적인 것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5. 5. 5. 06:46
2015년 5월 5일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14,19-28

그 무렵 19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복음 요한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공지사항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7일까지 제주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제주도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신부님이 한 분 계신데, 다른 신부님과 위문 차 방문을 하려고요. 저 역시 교육 받는 중이라 머리가 많이 복잡했는데, 바람도 쐴 겸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새벽 묵상 글이 6일과 7일, 이틀 동안 쉬도록 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라면서 8일 새벽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묵상 글 시작합니다.

일본의 미야기현 유리아게 마을의 주민 수는 5,600여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로 자그마치 700여명이나 사망하는 끔찍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의 일을 다시 되돌아보던 중에 지진과 쓰나미 사이에는 70여분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70분이면 충분히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사실 지진을 대비하는데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는 일본이 아닙니까? 그런데 70여분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의 주민들이 대피하지 못하고 그렇게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행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대피하기보다는 지진으로 이해 부서진 텔레비전 다리를 고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이해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역시 주님께서 원하는 중요한 일을 하기보다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지난 달, 엄청난 사상자를 낸 네팔의 대지진을 보면서 자연 앞에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문제들이 궁극적인 미래 안에서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이 사회에서 크게 이슈화되는 문제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불경기, 왕따, 저출산, 노인문제 등등…….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는 이런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들이 하찮은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죽음을 앞두고도 그런 문제들에 연연하고 있다면 “이 한심한 사람아~~~”라면서 혀를 찰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에게 있어 가장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과연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인 것일까요? 그것들이 과연 죽음 앞에서도 꽉 움켜잡아야 하는 것들일까요? 분명히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평화는 세속적인 것들에 쉽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 줄 뿐, 걱정과 의심으로 곧 괴로워하게 만드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화는 마음의 평온 뿐 아니라, 영혼의 평화로움까지 가져다주는 참된 평화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평화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들이 세상의 평화에 연연해서 참된 행복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가장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면서 평화를 이루라는 주님께 철저히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이 평화를 가진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게 될 것이며, 이 사랑의 힘으로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순간순간 우리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열린다. 사랑과 두려움의 갈림길이. 두려움은 우리를 유혹하지만 사랑은 그저 기다릴 뿐이다(현병호).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찾기보다는, 그냥 세잎클로버의 행복을 찾는 것이 쉽네요.


어린이날에...

이달 초 방정환재단에서 OECD 행복지수 국제비교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는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총 7,5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더군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대한민국 청소년 5명 중에서 1명꼴로 자살충동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초등학생들까지도 14.3%나 자살충동을 느꼈답니다. 그러다보니 행복지수도 높아질 수가 없지요. OECD 23개 국가 평균 이하에 머물었습니다.

자살충동의 제1원인은 무엇일까요?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되는 왕따 문제, 학업 문제일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은 ‘부모와의 갈등’(44%)이었습니다.

가정 안에서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니, 부정적인 말과 마음이 일상생활 안에서 사라지지 않지요. 하긴 어느 방송을 보니 청소년들이 1분 24초마다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욕은 완전히 습관화되어 옆에 어른이 있어도 거리낌 없이 나오더군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공부 1등을 하고, 돈 많이 벌고, 좋은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일반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해도, 낙천적이고 유쾌하게 살며 또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복도는 아주 높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닌 민주시민으로서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는 것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 기념일이지요. 이 어린이날에 값비싼 선물 하나 주었다고, 또 어디로 하루 놀러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어린이들과 가까운 공원이라도 산책나가보세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5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