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1108(토)-선행이나 자선을 할 기회가 있음에 감사를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11. 8. 07:50
2014년 11월 8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제1독서 필리 4,10-19

형제 여러분, 10 여러분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을 마침내 다시 한 번 보여 주었기에,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줄곧 나를 생각해 주었지만 그것을 보여 줄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11 내가 궁핍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13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내가 겪는 환난에 여러분이 동참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15 필리피 신자 여러분, 복음 선포를 시작할 무렵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 여러분 외에는 나와 주고받는 관계에 있는 교회가 하나도 없었음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16 내가 테살로니카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두어 번 필요한 것을 보내 주었습니다.
17 물론 내가 선물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18 나는 모든 것을 다 받아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에파프로디토스 편에 보낸 것을 받아 풍족합니다. 그것은 향기로운 예물이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제물입니다.
19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복음 루카 16,9ㄴ-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언젠가 전철을 타고 서울을 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전철을 타면 무조건 앉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인선의 시작인 곳에 살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편하게 앉아서 가지만 역을 하나씩 들릴 때마다 점점 사람들이 전철 안을 채우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제 근처에 서 계시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얼른 일어나서 제 자리를 양보하지만, 피곤할 경우에는 자리 양보하는 데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제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지요. ‘나보다 어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저보다도 훨씬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자리를 양보하지는 않더군요. 스마트폰만 계속 바라보면서 세상의 다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결국 제가 자리를 양보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속 좁은 생각을 하지요.

‘나도 지금 힘든데 왜 내가 자리를 양보해야지?’

선행하는 것이 좋은 일일까요? 아니면 나쁜 일일까요?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또한 서서 간다고 해서 제가 원하는 목적지에 가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몸이 약간 피곤할 뿐이지만, 분명히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으로 제게 너무나도 유익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기회를 얻었음에 감사해야 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양보하고 또 다른 이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자리 양보를 하면서도 저의 옹졸한 마음에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선행이나 자선 등등은 주님께서 분명히 좋아하시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이유를 붙이지 않고 무조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서 죄로 기울어 질 때가 많기 때문에 불의한 재물이라는 표현을 쓰시지요. 그런데 그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통해 주님께서 좋아하실 선행이나 자선 등을 실천해서 그들을 나의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안에 저의 경우처럼 어떤 사적인 감정이 들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 말고 여유 있는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도 있잖아? 왜 나만 도움을 줘야 하는 거야? 저런 사람도 도와주어야 하는 것인가?’ 등등의 사적인 감정을 내세워서 선행이나 자선에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판단은 내가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몫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께서 잘 활용하려고 잠시 맡겨주신 재물과 나의 몸을 주님의 뜻에 맞게 잘 사용만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선행이나 자선을 행할 기회가 있음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면서 기쁘게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더욱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이니까요.

인생은 요리와 같습니다. 좋아하는 게 뭔지 알려면 일단 모두 맛부터 봐야 하죠(파울로 코엘료).



없다. 있다.

어떤 분으로부터 재미있는 글을 하나 받았습니다. 나이별 없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10대 “철”이 없다. 20대 “답”이 없다. 30대 “집”이 없다. 40대 “돈”이 없다. 50대 “일”이 없다. 60대 “낙”이 없다. 70대 “이”가 없다. 80대 “처”가 없다. 90대 “시간”이 없다. 100대 “다 필요” 없다. 그런데 없는 것뿐만 아니라 있는 것도 있다고 하네요.

10대 끼가 있다. 20대 젊음 있다. 30대 짝이 있다. 40대 폼이 있다. 50대 멋이 있다. 60대 가족 있다. 70대 쉼이 있다. 80대 추억 있다. 90대 소망 있다. 100대 천국 있다.

있는 것, 없는 것. 없는 것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있는 것도 많기 때문이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기쁜 주말 되세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