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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 9,9-13. 오늘 복음에서는 마태오를 사도로 부르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17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의 명화 ‘마태오의 소명’을 본 뒤로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의 목소리가 마태오에게는 어둠을 뚫는 한 줄기 강한 빛으로 느껴졌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화가는 마태오가 주님의 말씀에서 빛을 보는 순간을 무척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빛과 어둠의 날카로운 대조를 통하여 허무감에 가득 찬 한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을 너무나 절박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수백 년 전의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습니다. 우울한 표정에 호사스러운 옷차림의 젊은 청년 마태오가 팔을 탁자에 괸 채 돈을 세다가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을 강렬하게 포착한 모습입니다.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세상에 결정적 순간을 갖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리로서 동포들을 가혹하게 착취해야 자신의 안락을 이어 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마태오는 떨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이기심이나 습관성 때문이기도,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어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둡고 우울한 그의 표정에서 드러나듯이, 이러한 삶이 그에게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분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구원해 주실 분은 주님뿐이심을 카라바조의 그림은 잘 보여 줍니다. 오른쪽 구석에 서 계신 예수님의 손과 얼굴에서 뿜어 나오는 듯한 빛은 마침내 마태오의 어둠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에게 ‘결정적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카라바조는 화가로서는 참으로 뛰어났지만, 인간적으로는 매우 격정적이었고 어두운 정열의 유혹에 자주 넘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그림이 보는 이에게 더욱 간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결정적 순간’을 여러 번 놓친 화가의 뉘우치고 한탄하는 마음이 그림에 서려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어느 평론에 공감한 적도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일상 안에서 ‘결정적 순간’이 다양하게 선사됩니다. 그에 대한 진정한 응답은 우리의 삶을 참행복으로 이끕니다. 결정적 순간은 여러 번 주어지지만 우리는 그것을 놓치곤 합니다. 단 한 번도 그것을 붙잡지 못하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허망할까요? 주님께서 우리의 일상에 깃든 어둠을 걷으시려고 던지시는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매일미사에서 옮김 (14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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