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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요한 17,11ㄷ-19.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미사에서는 ‘대사제의 기도’라고도 불리는 요한 복음 17장의 말씀이 봉독됩니다. 그리고 18장부터는 주님의 수난기가 바로 시작됩니다. 당신의 때가 온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지신 만찬 석상의 긴 이별 담화(요한 13―16장)는 이처럼 장엄하고 간곡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를 교회가 주님 승천 대축일을 보내고 성령 강림 대축일을 기다리는 주간에 들려주는 이유는, 이 기도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의 사건을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간적으로는 아직 이 세상에 계시며 기도를 올리시지만, ‘이제’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시기에 그분의 기도는 이미 세상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요한 17,13 참조). 예수님의 이 기도를 들으며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고 세상의 악에서 지켜 주실 것이라는 위로와 확신을 얻습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교회가 성령의 열매라고 가르치는 ‘두려움’(경외심)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힐라리오 성인은 자신의 『시편 주해』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흠 없는 생활을 함으로써, 그리고 진리를 알게 됨으로써 그것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전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참되게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을 진리에 비추어 보고 거룩함의 길로 나섭니다. 그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의 악에 자신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치신 기도의 참뜻입니다. 그 기도는 이제 성령 강림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 매일미사에서 옴김 (14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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