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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요한 8,1-11.
우리는 악의 신비를 진지하게 대하면서 비로소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위대함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악의 신비가 지닌 무게와 공포를 그대로 받아 안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리를 절망과 불신으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길입니다. 그러기에 악의 신비를 직면하는 것은 그 악이 결국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을 때 감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악의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죄지은 여인을 연민과 용서로 살리시는 오늘 복음의 대목은 악의 신비가 사랑의 신비 앞에서 어떻게 힘을 잃는지 보여 줍니다. 공지영 소설가는 공산 치하의 베네딕도회 수사들의 실화에 바탕을 둔 장편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를 냈습니다. 작가는 악의 신비를 무기력하게 하는 사랑의 신비를, 임종을 준비하는 늙은 독일인 토마스를 통하여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산의 베네딕도 수도원의 수사였던 그는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악명 높은 옥사덕 수용소로 끌려가 비참한 생활을 하고, 가장 절친한 수도원 동료인 요한마저 잃습니다. 요한은 '악의 신비'의 손아귀 속에서도 토마스에게 고백했습니다. "토마스, 아까 말했지 않나? 나는 '예.' 하고 대답했네. 이제 나는 저들이 나에게 강제로 시키는 모든 고통은 기꺼이 내 것으로 받아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물이 되었네. 이로써 무의미는 의미로 변하고, 악의는 사랑의 열매로 변할 수 있다네." 토마스 수사는 가까스로 독일로 돌아간 뒤에도, 또다시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동료의 이러한 고백과 그에게 상흔으로 남은 악의 무게 사이에서 고뇌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그는 악이 결코 사랑을 이길 수 없음을 굳게 믿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이제 이 주간이 지나면 성주간입니다. 악의 신비가 사라지게 하는 사랑의 신비를 맞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 준비는 바로 '내 삶'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 매일미사에서 옮김 (14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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