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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21205(수)-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2. 12. 5. 08:35

2012년 12월 5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 25,6-10ㄱ

그날에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복음 마태 15,29-37

그때에 29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철없었던 학창 시절, 저 역시 당시 보통의 남학생들처럼 외모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잠깐 교복자율화가 있었던 시대에 살았던 저였기 때문에 더욱 더 두발이나 옷에 신경을 썼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길게 기르기 위해 노력했었고, 또 소위 명품이라는 좋은 옷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집이 부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했었지요. 부자라면 두발 자율이 없는 우리나라에 살지 않고 외국에 살지 않을까? 또 부자라면 옷도 멋진 옷을 사 입지 않을까? 등등의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적도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지만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저를 만들어준 것은 당시에 원했던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많은 돈과 높은 지위만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행복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은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었습니다. 즉, 주님께 대한 신앙생활, 많은 독서, 그리고 내 이웃들과의 좋은 관계 등이 지금의 저를 있게끔 해준 것입니다.

곰곰이 따져보니 정작 과거의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세속적인 것들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그렇게 되지 못함에 얼마나 안타까워했고, 남들을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이것이 먼 훗날의 나를 만들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주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당신 곁에 머무르느라 사흘 동안이나 먹지 못한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시기 위해 빵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면 충분히 아무것도 없이 기적을 행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배불리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약간의 불편을 가져오십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빵과 물고기를 통해서 먼저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나누어주시지요. 그리고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우리들의 나눔을 통해서 하느님의 큰 영광이 드러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또한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함이 가장 중요함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순간의 만족,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더욱 더 우리에게 유익함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한다. 반대로 거짓은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같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카뮈)



예전에 올렸었지만 다시 한번 제 가족사진 올려 봅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며...

저의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십니다. 아버님은 올해 여든 넷, 어머님은 여든 둘이시지요. 연세는 많으시지만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가르침을 저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전해주십니다. 그 중에 제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먼저 아버지에게는 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젊으셨을 때처럼 아주 열심히 공부하십니다. 노안으로 책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커다란 돋보기를 꺼내들어 늘 책을 읽고 글을 쓰십니다.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신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셨지만, 지금 역시 책을 손에서 떼지 않으시면서 열심히 글을 쓰고 계시지요.

또한 어머니에게는 신앙을 배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늘 기도하는 모습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항상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실 정도로 어머니의 일 순위는 언제나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새벽 3~4시면 늘 깨어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편찮으셔도 또 급한 일이 있어도 기도를 미루지 않는 모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남들은 제가 일찍 일어난다고 또한 매일 빠지지 않고 글을 쓴다고 대단하다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러나 사실 부모님의 영향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보여주셨던 그 모습을 저 역시 아주 조금 비슷하게 따르고 있을 뿐인 것이지요. 그래서 부모님께 늘 감사하고 동시에 미안한 마음입니다. 부모님께서 받으실 칭찬을 제가 대신 받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제게 큰 영향을 주신 부모님. 이제는 저 역시도 남들에게 그러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야 할 텐데,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지 반성을 해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2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