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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오늘의 기도·묵상

190929(일)-오늘의 묵상(사랑의 실천)

두레골 2019. 9. 29. 07:17
복음 루카 16,19-31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과 레베카가
어떻게 혼인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에게 많은 낙타와 온갖 선물을 주며
아들 이사악의 신붓감을 데려오라고 보냅니다. 

종은 샘물 곁에서 자신의 낙타 열 마리와 자신에게 물을 길어 주는 소녀가 있다면
그 소녀가 주님께서 보내 주신 주인의 며느리라 여기겠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레베카가 나타나 낙타들과 종에게 물을 길어 줍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이고 이사악은 예수님이며
레베카는 교회에 비길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혼인함으로써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먼저 낙타 열 마리를 먹일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10’은 계명을 의미하고, 모든 계명의 완성은 ‘사랑’입니다(로마 13,10 참조).
사랑의 실천만이 하느님의 가족이 되고 하느님 나라의 상속권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비록 모세 오경과 예언서를 읽으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우물에 빠졌는데 안 구해 준다면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굶주린 라자로가 문 밖에 있는데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니
그는 스스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님을 드러내며 산 것입니다.
이와 달리 라자로는 개들에게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 핥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내어 줌입니다.

제1독서에서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우리 주위에 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걱정 없이 흥청댈 수 있다면 스스로 사랑이 없음을 드러내며
지옥을 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매일미사에서 옮김 (19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