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갈라 5,1-6 형제 여러분,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2 자, 나 바오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3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다시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은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 여러분은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6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복음 루카 11,37-41 그때에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언젠가 저의 강의 때에 모인 청중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을 그 위에 포개십시오. 그리고 이 상태로 순발력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제가 ‘손뼉을 치세요.’라고 말하면, 누가 가장 빨리 순발력 있게 손뼉을 치는 지를 찾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손뼉을 치세요.’라고 제가 말할 때 손뼉을 빨리 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자~ 그럼 제 말을 잘 듣고서 여러분의 순발력을 보여주십시오.”
저는 이렇게 말한 뒤에 잠깐 기다렸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힘차게 손뼉을 쳤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제가 분명히 ‘손뼉을 치세요.’라고 말할 때 손뼉을 치라고 했으니까 또 혹시 몰라서 반복해서 말씀까지 드렸으니까 아무런 반응도 없어야 정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얼른 손뼉을 치더군요.
이 실험은 어떤 심리학자가 실제로 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신체 언어의 효과가 말의 효과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지요. 실제로 강의의 효과도 말만 했을 때보다 신체 언어로 다가오는 시각적인 효과를 첨가해야지만 더 높습니다.
이는 우리 삶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그냥 말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몸으로 보여주는 신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더 큰 신뢰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녀에게 책을 읽으라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자녀에게 자신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그때 자녀는 그저 단순히 잔소리로만 받아드립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 않지만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 역시 아버지를 따라 책을 스스로 읽습니다. 아버지의 신체 언어를 들은 것입니다. 기왕이면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말만 하는 사랑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신체 언어를 통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식사 초대를 받으셨는데 여기에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겉으로만 깨끗하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은 전혀 실천하지 않은 채 겉으로만 깨끗한 척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속에 담긴 것을 탐욕과 사악이 아닌,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선으로 채우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안에는 과연 어떤 것으로 채워져 있을까요? 사랑은 말로만 하면서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신체 언어로 적극적으로 자선을 베푸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겉과 속 모두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나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던가? 내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공병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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