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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 11,25-27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가 낳은 진정한 사유의 천재입니다. 그는 날카롭고 깊이 있는 통찰로 철학의 새로운 전환을 이루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모름지기 침묵해야 한다.”라는 그의 책 『논리 철학 논고』의 마지막 문장은 신학에 큰 도전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는 학문적으로 신에 대해 접근하려는 자들에게는 비판적이었으나 소박하고 참된 신앙인들의 진정한 믿음은 무척 존경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이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톨스토이가 전해 주는 러시아 민담 ‘세 명의 노인’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여행 중인 한 주교가 섬에 은자들이 산다는 말을 듣고 어부를 채근해 그 섬을 찾아가 세 노인을 만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된 기도문 하나 모른 채 다만 “당신도 셋이요 우리도 셋이니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답답하게 여긴 주교는 해가 질 때까지 그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려고 애썼답니다. 주교는 일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배를 탔는데, 갑자기 멀리서 무엇인가 빛을 내며 물 위를 걸어 다가오는 모습을 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 은자였고, 그들은 주교에게 주님의 기도가 잘 기억나지 않으니 미안하지만 다시 가르쳐 주십사고 청하였습니다. 주교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대들의 기도야말로 주님께 올라갈 것입니다. 그대들,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들이여, 난 그대들에게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부디 우리 불쌍한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신비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의 일치이며, 그 신비는 지혜롭다는 자들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심 어린 믿음을 지닌 이들에게 선사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성찰과 숙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근본인 것은 앞의 이야기에 나오는 은자들처럼 단순하고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뢰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매일미사에서 옮김 (14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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