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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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20412(목)-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2. 4. 12. 07:18
2012년 4월 12일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3,11-26

그 무렵 치유받은 불구자가 11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온 백성이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12 베드로는 백성을 보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6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20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21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합니다.
22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야 한다.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24 그리고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말씀을 전한 모든 예언자도 지금의 이때를 예고하였습니다.
25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희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어 주신 계약의 자손입니다. 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복음 루카 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여러분들에게 양해의 말씀을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부터 새벽을 열며 카페를 잠시 비울 예정입니다. 부활을 맞이해서 지인들과 여행을 하기로 했거든요. 따라서 내일부터 주일까지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을 열 수 없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새벽 카페를 잘 지켜주시길 바라면서 오늘의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어떤 돼지가 우연한 기회에 궁전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궁전이라는 소문이 가득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이 돼지가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궁전을 구경하고 돌아온 돼지는 볼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투덜대기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의아한 마음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님 사는 궁전이라고 해서 산해진미가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깨끗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없어.”

이 돼지는 볼 것을 찾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먹을 것만을 찾은 것이지요. 하지만 잘 정리되어 모든 것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궁전에서 먹을 것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쓰레기통마저 말끔했을 테니까요. 이렇게 오로지 먹을 것만을 찾으려 했으니, 볼거리가 되는 화려한 궁전의 어느 무엇도 돼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돼지의 모습을 우리 역시 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즉, 내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보려하고 또 소유하려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것들만 소유하기 위해 힘을 쓰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씀과 함께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3년 동안을 함께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도 오히려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이야기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믿음의 마음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믿음의 마음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내 자신은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닌,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주님을 향한 믿음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야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꿈에서 시작된다. 꿈 없이 가능한 일은 없다. 먼저 꿈을 가져라.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체 게바라).


저 역시 선거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요즘 성당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 학업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학원을 가야하기 때문에 성당에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기억하면서 공부가 제일일까 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공부만 잘하는 학생과 공부 빼고 다 잘하는 학생 중에서 누가 더 나은 것일까요? 당연히 공부만 잘하는 학생보다는 공부 빼고 다 잘하는 학생이 더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더 인정받는 사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만들기 위해 성당도 보내지 않고 오로지 공부만 시키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나중에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정말로 공부만으로 사람의 등급이 바뀔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무지하게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못했는데 공부 하나만큼은 정말로 잘했습니다. 지금 현재 이 친구는 학교 선생님으로 월급쟁이로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공부는 지지리 못했지만 그 외에는 다 잘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현재 사업을 크게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공부만으로는 절대로 평가되어서는 안 되며, 또 평가되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공부만으로 평가하는 이 세상의 어른들은 뭘까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