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91028(월)-사도 (송영진 모세 신부)

두레골 2019. 10. 28. 07:32






2019. 10. 28.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루카 6,12-19)


매일미사 말씀보기



< 사도 >

예수님 승천 후에 마티아를 사도로 뽑을 때 베드로 사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체험한)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또 예수님의 말씀들과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증언한 증인들입니다.
그들의 증언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증언은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다.” 라는 증언입니다.
사도들의 증언은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다.”는 증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받아들였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곧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에 믿음이 없다면, 본 것과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하지 않을 것이고,
혹시 증언하더라도 믿음 없이 하는 증언은 증언이 아닙니다.)

마르코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의 일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4-15).”
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고, 사도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면,
사도는 ‘믿는 사람’이고, ‘증언하는 사람’이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고,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고, ‘교회의 주춧돌’이고, ‘교회를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열두 사도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만일에 거기까지만 말하고, 그들의 위대함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도들을 깎아내리는 말이 될 뿐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사도들이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겉’이 아니라 ‘속’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도로 뽑으신 것은
그들이 내적으로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두드러진 특징은(자격은) ‘믿음과 열정’입니다.
물론 그들의 믿음과 열정이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믿음과 열정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차츰 깊어지고 강해졌고,
또 나중에 성령을 받은 뒤에 완성되었습니다.
저절로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 완성은 그들 자신들이 받은 은총에 온전히 응답했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들은 모두 위대한 선교사들이고, 순교자들이고, 성인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과 죽음을, 믿음과 열정과 노력을 본받아야 합니다.

본받는다는 것은 그대로 따라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또 그들의 믿음과 열정과 노력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척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본받아서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너무 거창한 일로만 생각할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로만 생각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31-32).”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위해서만 기도하셨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사도들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수난 때뿐만 아니라 언제나 항상,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고,
사도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인들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또 인류 전체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위대한 사도가 되어서 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고, 그들을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사도들 자신들도 충실하게 노력함으로써 그 기도에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은 항상 은총과 응답이 합해짐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사도들을 본받는 일도,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은총으로 도와주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반자 유다를 위해서도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러나 유다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사도들을 본받는 일은, 그들의 헌신적인 선교활동을 본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뒤따라 걸으면서,
생을 마칠 때까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그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모든 신앙인은 각자의 위치에서 한 사람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공동체와 거리를 두고서 혼자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사랑 없는’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에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생활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생활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따라서 선교활동과 사랑 실천은 사실상 우리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원문보기 Rev.S.Moyes  송영진 모세 신부